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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의 생애 (1)

작성자
heawoldang
작성일
2019-12-07 00:09
조회
204

여기에서는 <관음사 봉려관 비문>원문을 중심으로 해서, 진원일의 기술과 필자가 채록한 구술을 참고로 하여 비교 검토한다.

<관음사 봉려관 비문>원문에,

중년부터 다행히 대단월인 화주가 되어, 밤낮으로 착실하게 예불과 염불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느슨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무애감통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처럼 부처님 전에 지성을 다하고 믿었으며, 더욱이 집에 천금을 쌓아 두어도 결국 몸을 지옥에 빠뜨리는 좋은 먹이가 될 것이요, 마음에 하나의 선을 쌓으면 마침내 천상에 오르는 좋은 다리가 될 것이라는 마음을 내었다. 그리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부지런히 여기저기 참방하던 중, ......

2가지 중요한 내용이 언급된다. 하나는 봉려관이 출가수계하기 전에 이미 막힘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둘은 내면에 선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선행수행의 중요성을 봉려관이 갖게 되었다 이다.

그러나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후대인들의 오해를 야기한 번역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즉 봉려관이 현가를 나올 때 천여 량의 돈을 가지고 나왔다는 이 부분이다. 진원일은 '집에 모아 두었던 돈 천여 량을 가지고 와서 기도와 자선사업을 하여 죽은 뒤에는 좋은 곳에 태어날 준비를 했고, 마음속으로 늘 착한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죽은 뒤에는 천국에 갈 수 있는 큰 복을 지었던 것이다'고 한다.

후일 중앙포교당 소유권 재판을 야기한 원인 중 하나가 이 번역오류에서 기인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이후 봉려관의 생애 언급 시에, 다수의 사람들은 서슴없이 봉려관이 집에서 '천여 량'의 돈을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천금'은 '큰 돈' '많은 돈' '귀중한 것'을 의미한다. 윗 문장에서 이것을 '천 냥이 돈' 혹은 '천량이나 되는 금'으로 직역하는 것은 무리이다.

진원일이 기술하길,

18세 되는 서기 1882년 봄,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현국남씨와 결혼해서 1남 4녀가 있었으나 모두 고인이 되었다. 아들 현종식씨는 일찍이 면장과 동척주식회사 전무, 식산은행 지점장 등을 지냈다고 한다. 손자 한 분과 외손자 남매 4분이 현재 생존하고 있다.

진원일은 봉려관이 출가 전, 자녀가 1남 4녀라고 한다. 그러나 봉려관과 함께 생활했던 재가제자와 즉금의 두옥문도는 1남 3녀로 알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아들은 현종식, 딸은 현경화, 현경우, 현목련이다. 현종식은 결혼해서 재가자의 삶을 살았고, 현경우, 현경화, 현목련은 모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현종식은 당시 제주불교재건에 동참한 흔적이 있다. 제주불교협회 창립과 중앙포교당 창설 시주자 명단 등에 그의 이름이 실려 있다. 현종식에게 아들이 있고, 현국남의 손자가 중앙포교당을 상대로 재산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으며, 1964년에서 1965년쯤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한다.

이상진(대원각보살의 아들)의 구술에 의하면, 이 소송은 수년을 했다고 한다. 필자가 제주에 거주하는 재가제자들의 증언을 정리하면, 봉려관의 손자가 봉려관이 출가 할 때 현씨 재산을 가지고 나갔는데 이것으로 포교당을 지었으니, 우리 손자가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소송사유였다. 손자들이 육지 판사와 검사에게 힘을 썼고, 승소하면 재산을 나누기로 하고 소송을 진행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당시 검사가 바뀌었고, 바뀐 검사가 와서 이 사건을 살펴보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어서 대원각의 부군(이방훈)을 석방시켰다. 대원각보살 부부가 포교당을 안 빼앗기려고 증인을 대고 했는데, 그래서 이방훈을 구속시켰다고 한다. 15일 정도 감옥에 있었던 이방훈은 감옥에서 나와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봉려관이 중앙포교당 땅을 구입했을 당시 개인 명의로 등기를 했다가, 후에 관음사로 등기를 했는데, 그래서 손자들이 소송을 한 것이라고 한다. 중앙포교당은 대원각 보살 부부가 지켜낸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발췌 : 해월당 봉려관 스님의 발자취 세미나 - '근대 한국여성의 선구자 해월당 봉려관스님' / 2018. 11. 22 / 혜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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