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산천단 - 출가수계의지 확립, 하화중생의 발아 (2)
작성자
heawoldang
작성일
2019-12-08 16:22
조회
1327
수계를 위해 제주도를 떠난 시기는? 크게 두 설로 나뉜다. 하나는 '1907년 9월'이고, 다른 하나는 '1907년 12월 1일'이다.
먼저 '1907년 9월'을 언급한 것은,
- <관음사 봉려관 비문>의 원문 : "丁未(1907)九月"
- 진원일 : "서기 1907년 음력 9월에 중 될 생각으로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를 찾아갔다."
<관음사 봉려관 비문>은 오이화 생존 시에 작성된 것이며, 작성자는 불분명하다. 진원일의 '1907년 음력 9월'은 <관음사 봉려관 비문>원문에 의거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탐라불교사료>에서도 1907년 9월이라고 한다.
다음은 봉려관이 출가수계를 위해 제주도를 떠난 시점을 '1907년 12월 1일'로 보는 견해이다. 장연종(1924~2017)이 대표적이다. 탐라불교신문이 기획특집으로 "안봉려관스님 일대기"를 연재했는데, 연종이 자료제공을 했다. 여기에서 '1907년 12월 1일 제주를 출발하여 승려가 되고저 한 안봉려관은 ......'고 한다. 또 연종이 감수한 "안봉려관스님 일대기1"에서도 '1907년 12월 1일 제주를 출발하여 승려가 되고자한 안봉려관은 ......'고 한다.
종합하면 위에서 인용한 자료 중 봉려관 생존 시와 가장 근접한 시기에 작성된 것은 <관음사 봉려관 비문>이다. 그리고 진원일은 봉려관과 함께 중앙포교당 등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연종의 '12월 1일'은 연종이 근거한 문헌과 구술이 불분명해 인용이 조심스럽다. 뒤에서 언급될 대흥사까지 여정을 참조하면 '1907년 9월'설이 타당하다
<발췌 : 해월당 봉려관 스님의 발자취 세미나 - '근대 한국여성의 선구자 해월당 봉려관 스님' / 2018. 11. 22 / 혜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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