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봉려관의 생애 (3)
진원일은 또 이르길,
봉려관 스님이 35세 되는 서기 1899년 가을철에 어떠한 고승이 스님을 찾아가 나무로 만든 조그마한 불상을 바랑 속에서 끄집어 내 후 스님에게 주면서 "이것은 관세음보살상인데 당신은 이 보살상을 방안 깨끗한 곳에 잘 모시고 아침저녁은 물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않으면 당신 아들딸이 단명할 것이니 그리 알라!"하면서 가 버렸다.
봉려관 삶의 큰 전환점이다. 진원일의 기술에 의거하면, 불상을 받은 봉려관은 그날부터 방 안에 모시고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염송했고, 이로 인해 현국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나 봉려관의 관음정진은 계속되었고, 결국 집을 나올 결심을 한다. 같은 마을에 집을 구입한 후 불상을 모시고 혼자 살며 부지런히 염불을 한다. <관음사 봉려관 비문>원문은 봉려관이 불교를 접하고 착실하게 믿는 신자가 된 시기를 '중년'이라 하고, 진원일은 이 시기를 '30여세부터'라고 의역한다.
그렇다면 봉려관이 집을 나온 시기를 유추해 보자. 진원일은 봉려관이 36세 되는 1900년 봄에 동리청년들이 모여와서 불상을 때려 부수고 협박을 해서 그 집을 팔아버리고 산천단으로 갔다고 한다. 진원일의 서술에 따른다면, 봉려관이 현씨 집을 나온 시기는 1900년 봄이 채 되기도 전이다. 그러나 제적등본에 의하면, 현목련의 출생연월이 '1900년 2월 9일(양력 3월 9일 금요일)'로 되어 있다. 현목련이 1900년 초봄에 태어난 것이다. 봉려관이 집을 나온 시기는 현목련을 출산한 후일 것이다. 이유는 '불상을 모시고 혼자 살며 부지런히 염불했다'고 하고, 또 여타의 기술에도 집을 나와 고난을 겪는 내용에 아기를 데리고 있었다는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1900년 봄에 동리를 떠나 산천단으로 갔다는 것은 오설일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봉려관이 현씨 집을 나온 시기는 1900년 후반기 또는 1901년 초일 것으로 유추한다. 진원일의 기록을 따른다면 현목련을 출산하지도 않고 집을 나왔다는 것이 된다. 또 출산하자마자 집을 나와 동리에 새 거처 마련 가능성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출산 후 산모가 아이를 보살피지 않고 혼자서 집을 나올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그리고 출산 한 사모를 바로 나가게 한다는 것도 한국인 정서 상 보기 드문 일이다. 한국 여성의 모성애 그리고 가족애를 고려해도 이는 개연성이 낮다고 본다.
1918년 3월 2일 <매일신보> 3면에는 "38세가 되도록 여염집 부녀로 있어 유자생녀하고 살다가 ...... "고 한다. 이 기사내용에 의거하면, 38세 되기 바로 직전을 염두에 두고 계산해도, 1865년생이니까 1901년이 된다. 그렇다면 현목련을 출산하고 비교적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 집을 나온 것이 된다. 그러나 <관음사 봉려관 비문>의 1901년 봄 비양도에 간 것과 약간의 괴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1918년 3월 2일 <매일신보> 3면에는 비양도가 언급되지 않는 것도 참조해야 한다.
종합하면, 필자는 봉려관이 집을 나온 시기를 1901년 초일 것으로 보고, 집을 나와 얼마 되지 않아 화북 동리 사람들에게 다시 쫓기어 1901년 초봄에 산천단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고는, 불상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니다가, 1901년 늦봄에 비양도로 불상을 구하러 간 것으로 유추한다.
<발췌 : 해월당 봉려관 스님의 발자취 세미나 - '근대 한국여성의 선구자 해월당 봉려관 스님' / 2018. 11. 22 / 혜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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