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당 봉려관

제주 불교의 중흥조

들어가는 말

 

봉려관 스님은 1908년 1월 5일(음) 대흥사에서 챙겨 준 불상과 목탁 등을 모시고 제주도 산천단 본인 거처로 되돌아왔다. 산천단 거처에 불상을 모시고 조석으로 예불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관세음보살’ 기도는 계속되었다. 즉 봉려관 스님의 산천단 거처는 근대제주불교에서 최초로 승려가 불교의례를 집행한 장소이다. 

<산천단 옛 소림사지 추정 터>

함지사지이후생(陷之死地而後生)

1908년 4월 봉려관 스님은 산천단 거처에서 처음으로 ‘부처님 오신 날’행사를 무사히 거행했다. 그러나 그 후 토착인들이 몰려와 극력하게 말하기를 “이런 물건을 이대로 두면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고 속여 세상을 어지럽게 해서 반드시 큰 화를 불러 올 것이니 쫓아내야 한다.”고 하면서, 집에 불을 질러 버렸다. 이에 집안에 있던 봉려관 스님이 불에 타 죽을 뻔 했지만, 급히 불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 나왔고, 이 때 봉려관 스님의 처지는 천지간에 집 없는 개이라 할 만 했다.

갈 곳 없이 걸어서 가다보니 이미 백록담 주변에 가 있었다. 7일 간을 아무 것도 먹지 못해 거의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산길을 걸으면서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출가를 했는데, 중생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죽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며 걷다가 발을 잘못 디뎌 산아래로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에 몸이 떨어졌고, 수 천마리의 떼 까마귀가 옷을 물어 봉려관 스님을 구제하였다.

이와 관련해 진원일 스님(1916~1987)은 “봉려관 스님은 어느날 저녁에 H군과 나를 포교당 동쪽 집으로 불러 방에 앉혀놓고 이상과 같이 이야기를 한 뒤, 궤 속에서 수 없이 많은 구멍 뚫어진 흑색 장삼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 장삼 구멍들이 수천 마리의 떼 까마귀가 주둥이로 물고 뚫어 놓은 구멍이다! 함지사지이후생이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느냐?하였다.”고 전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봐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은, 봉려관 스님의 생애를 충분히 대신할 만한 격언일 뿐만 아니라 봉려관 스님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해월굴

1908년 5월 단오날 운대사에게서 가사를 받은 봉려관 스님은 사찰을 창건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작심하고 사찰창건 불사를 성취하기 위해서 100일 관음기도를 하러 백록담 근처까지 올라간다. 100일 관음정진 중 봉려관 스님은 온 산에 불이 타오르면서 불이 봉려관 스님 몸쪽으로 확 들이닥쳐서 깜짝놀라 눈을 뜨면서 한 소식을 하였다. 깜짝 놀라 눈을 뜨니 불은 온대간데 없었다고 한다. 관음정진으로 깨달음을 체험한 봉려관 스님은 찾아온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바로 꿰뚫어보시고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대차게 꾸짖었다고 한다. 그래서 봉려관 스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전언이다.

기도 성취를 한 봉려관 스님은 한라산을 내려온다. 봉려관 스님은 곧 육지로 나가서 사형인 혜원 스님(?~1955)을 만나 사찰 창건불사를 포함 제반사를 의논한 후, 불교의례에 필요한 용품과 불사금을 보시 받아 제주도로 되돌아온다. 제주도에 되돌아 온 봉려관 스님은 해월굴에 정착하고는 지금의 한라산 관음사 창건에 매진한다.

당시 지금의 관음사 터는 먹을 수 있는 물이 있었고 수풀이 우거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산이었다. 봉려관 스님은 해월굴에서 관음정진을 하면서 혼자서 나무를 베어내고 돌을 주워내며 터를 고르기 시작했다. 

< 해월굴 입구 >

관음사 창건

법인 스님(1931~2011)은 “(혜원)노스님께서 ‘봉려관 스님이 관음사를 창건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 봉려관 스님의 손은 사람 손이 아니었다. 마음이 아파 봉려관 스님 손을 보지 않으려고 애써 눈을 피했다’고 하셨다”고 증언하신다.

근대 제주의 최초 사찰을 창건하겠다는 원력이 이루어 낸 것이 1909년 봄에 창건된 한라산 관음사이다. 최초 창건된 관음사는 제주 돌에다 어욱(제주 억세)과 흙을 버무려 만든 흙덩이를 채워가면서 만든 벽, 그리고 어욱으로 지붕을 얹은 집 1채였다. 이 어욱집 1채가 2채가 되고 또 3채가 되어가면서 관음사의 위용도 더해 간 것이다.

이후 관음사 불사에 도움의 손이 들어왔고, 관음사는 초가집이었지만 날로 사찰의 위용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 관음사 옛모습 >

근대 제주불교의 중흥조

근대제주불교 최초의 비구니 봉려관 스님은 관음신앙으로 근대제주불교를 재건해낸 분이다.

법화사, 불탑사, 고관사 등 폐사된 고찰들을 중창한 중창주이며, 수행중심 사찰인 관음사와 독립운동거점지인 법정사를 비롯해 월성사, 백련사 그리고 도심포교의 산실인 중앙포교당 등 10여개 사찰과 포교당을 창건한 창건주이다.

이러한 봉려관 스님의 노력으로 근대 제주불교는 중흥될 수 있었다.

 

< 해월당 봉려관 스님 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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